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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뉴스 프리즘 - http://www.newsprism.org/news/article.html?no=861

<기억>은 도대체 어디에, 어떻게 저장되고 변화하는 것일까?


우리는 살아가며 많은 것을 기억하고 또 많은 것을 잊는다. 망각과 기억은 뇌의 보편적인 기능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좀더 살펴보면 오래전 일은 잘 잊게 되고 금방 했던 일은 잘 기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것이 보통 사람들이 갖는 것이라면 나의 뇌 속에는 단기적으로 그 정보를 보관하는 기능과 장기적으로 보관하는 것이 별도로 나누어져 있지는 않을까 하고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무언가를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뇌 속에 그러한 정보가 자리하는 곳이 존재한다는 강력한 증거이다. 또한, 한 개인 혹은 사람마다 기억력의 차이가 다양하게 발생한다는 것은 우리의 기억메커니즘이 상당히 유연하게 이루어져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이 가진 뇌의 고등기능 중 그 첫 번째에 해당하는 <기억>은 도대체 어디에, 어떻게 저장되고 변화하는 것일까?

2001년 상영된 크리스트퍼 놀런 감독의 <메멘토>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살해를 당한 부인의 복수를 위해 남편인 주인공이 그 범인을 추적하는 영화인데, 영화 속 주인공은 불과 몇 분 전에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해 단기기억만을 되돌려가며 범인을 추적한다. 분명 기억을 담당하는 뇌 속 어딘가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또 한가지 유명한 기억에 관한 예가 있다. 1950년께 미국인 HM은 심각한 간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3년 뒤에 간질병의 원인이 되는 뇌의 중앙 측두엽의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게 되었다. 이 때 뇌의 일부인 손가락만한 크기의 이것을 함께 떼냈다. 이후 HM에게는 예상 밖의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수술 뒤에 일어난 모든 일을 기억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매일 아침 HM은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도 전혀 기억할 수가 없었다. 그럴 때마다 의사가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설명해도, 그 순간에는 이해하는 듯하다가 금세 다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잊어버리곤 했다. 수십 년이 지나도 HM은 과거 뇌수술을 한 날 이후의 기억은 전혀 못한다. 매일 '새로운 인생'을 사는 셈이다. 재미난 것은 HM은 수술 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은 아무것도 기억 못하는 반면에 수술 전에 겪었던 일은 거의 완벽하게 기억했다. 모든 기억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다만 새로운 것을 기억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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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가 들수록 머리가 좋아진다'
ⓒ '해마' [은행나무]
이 환자에게서 떼어낸 것이 바로 우리의 뇌 속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중추기관인 '해마(Hippocampus)'이다. 귓속에 좌우 하나씩 있는 두께 1센터, 길이 5센티 정도의 작은 뇌 부위에 불과한 이 곳에서,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엄청난 양의 기억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해마는 기억의 제조공장에 해당하는 셈이다.

한 가지 질문을 더 해보자. 해마가 기억의 제조공장이라면 그 제품은 어디에서 저장될까? 정답은 바로 뇌 표면부위에 인간에게 유독 현저하게 발달한 곳으로 고도의 정신작용을 담당하는 장인 '대뇌피질'이다. 즉, 우리의 뇌 속에는 기억을 만드는 곳과 기억을 저장하는 장소가 다르다. 뇌의 기억메커니즘은 기본적으로 분업화가 이루어져 있는 셈이다. 여기서 재미난 것은 해마로 들어오는 상당수의 정보는 폐기되어 버린다는 점이다. 장기기억을 담당하는 대뇌피질로 가지 않는 기억이 대다수라는 얘기다.

우리의 뇌 속에는 시시각각 엄청난 양의 정보가 유입된다. 뇌 속에 기억을 오랜 시간 보존하려면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만약 매순간순간 들어온 정보 중 어떤 것이 필요하고 어떤 것이 불필요한지를 검토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뇌의 기억용량이 크다고 할지라도 넘쳐흘러버릴 것이다. 필요 없는 기억을 뇌에 저장시키는 것은 에너지의 낭비인 셈이다. 그렇지 않아도 뇌는 일반적으로 대량의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 뇌의 무게는 체중의 약 1/40 밖에 안 되지만, 신체 전체 에너지의 약 25%가 뇌에서 소비되고 있다. 기억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서 불필요한 정보는 소거하는 곳이 거대한 뇌의 시스템을 운영하는데 맞을 것이다. 즉, 해마는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중요정보만 선별하여 대뇌피질로 보내게 된다.

특히 해마는 뇌과학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데, 태어난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기 시작한다는 인간의 뇌세포가 이 해마에서는 도리어 증가하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우리 뇌의 신경세포는 갓난아기 때 그 수가 약 1천억개로 가장 많고, 그 뒤로 성장하면서 점점 감소한다. 1초에 1개정도 줄어들며, 성인이 되면 하루 수만개에서 수십만개씩 줄어든다. 그러나, 해마에서는 끊임없이 세포가 만들어진다. 죽어가는 속도도 엄청 빠르지만 사라지는 것들을 대체할 세포가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속도차다. 만들어지는 속도가 더 빠르면 해마는 발달하게 된다. 기억의 관문에 해당하는 해마의 발달은 당연히 뇌기능의 향상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해마에서 중요정보라고 인식되는 것은 대뇌피질로 보내어져 장기기억된다. 특히 감정과 연관된 정보들일수록 더욱 강력하게 저장된다. 해마의 바로 옆에 붙은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가 여기에서 커다란 역할을 한다. 해마와 편도는 그 위치상 서로 긴밀하게 정보를 주고 받고 있다. 생존에 필요한 정보가 가장 우선적으로 기억된다. 더불어, 좋아하는 정보일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좋아하는 것을 잘 외울 수 있다는 말은, 편도체를 활성화시키면 해마도 활성화되기 때문에 가능한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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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 속 연결망 '시냅스'
해마를 거쳐 실제 기억을 보존하는 대뇌피질에는 약 140억개의 신경세포가 존재하는데, 이 대뇌피질에서의 기억의 핵심은 바로 신경세포와 신경세포를 연결하는 ‘시냅스(synapse)'이다. 이 시냅스가 얼마나 촘촘히 연결되어 있느냐가 기억력, 창의성을 비롯한 두뇌발달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다. 우리의 뇌에 존재하는 1천억개의 뇌세포는 약 100조개의 시냅스를 형성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엄청난 네트워크인 셈이다.

대뇌피질에 기억이 만들어지는 구조는 마치 숲 속에 길이 나는 것과 같다. 무수한 뇌신경세포가 거미줄처럼 연결돼 교신하면서 점차 강화되는 것이다. 반복 학습된 내용이 잘 기억되는 것은 사람이 많이 다닌 길일수록 뚜렷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자꾸 사용하는 시냅스나 어렸을 때 반복자극을 받은 시냅스는 더욱 활성화 되지만 쓰지 않는 회로, 시냅스는 가지도 없어져 점차 약해져 사라지게 된다. 장기기억은 특수한 물질형태로 존재하기보다는 두터워진 시냅스부에 흔적으로 견고하게 아로 새겨져 오랫동안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뇌는 자꾸 사용할수록 좋아지며 좋은 기억을 오랫동안 유지시킬 수 있게 된다.

인간의 뇌가 기억의 메커니즘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너무나 많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뇌가 가진 기억메커니즘이 살아움직인다는 것이며, 그 생성과 소멸이 나의 뇌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달려있다는 점이다. 1천억 개의 뇌세포와 그것을 연결하는 100조 개에 이르는 시냅스가 만들어내는 뇌의 가능성은 실로 경이로울 뿐이며, 그 경이로움을 결정하는 주체는 바로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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